1화낙뢰
빛이 먼저 왔고, 소리는 그 다음이었다.
윤서진은 병원 옥상에서 담배 대신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야간 진료가 끝난 새벽 세 시, 하늘은 젖은 잉크처럼 낮았다. 낙뢰가 병원 피뢰침을 때렸다고 기억했지만, 눈을 떴을 때 그의 등 아래에는 옥상의 콘크리트가 아니라 젖은 흙이 있었다. 흙에서는 풀 냄새와 재 냄새가 함께 났다.
기와 지붕. 등불. 낯선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수군거렸다. 누군가 횃불을 가까이 들이댔고, 서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다. 손등에 닿는 열기가 너무 생생해서, 꿈이라는 가설은 그 순간 폐기되었다.
그는 가운 주머니를 더듬었다. 스마트폰은 없었다. 대신 손끝에 잡힌 것은 늘 들고 다니던 작은 치경(齒鏡) 하나뿐이었다. 손잡이가 닳은 그 거울은 그가 이 세계로 가져온 유일한 문명이었다.
"어디서 온 자냐."
낮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서진은 대답 대신 주위를 살폈다. 담장 너머로 겹겹이 이어지는 지붕의 곡선, 멀리서 들리는 북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 진료실 벽에 걸어 두었던 역사 달력의 그림과 너무 닮아 있었다.
"서울…… 병원에서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병원이라는 말이 이곳에서 어떤 뜻으로 들렸는지 서진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창날이 그의 목 앞에서 멈추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요망한 말을 하는군. 옷차림도 괴이하다."
서진은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환자를 처음 만났을 때 하는 동작과 같았다.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 창을 든 사내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궁궐 뒷마당의 밤은 길었다. 서진은 헛간 같은 곳에 갇혔고, 문밖에서는 교대하는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오갔다. 그는 벽에 기대앉아 치경을 돌려 보았다. 작은 거울 안에 등불이 흔들렸다. 손이 떨리는 것은 추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밤이 깊어졌을 때, 멀리 침전 쪽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길게, 끊어졌다가, 다시 길게. 서진은 그 소리를 알았다. 응급실에서 수도 없이 들어 온 소리였다. 통증이 사람의 품위를 벗겨 내는 소리.
"저건…… 치통이야."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문밖의 발소리가 멈췄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숨을 죽이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네가 뭘 안다고." 문틈으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아까 창을 들이댔던 사내였다. 목소리에는 경계보다 피로가 더 많이 섞여 있었다. "어의 열 분이 매달려도 못 고치는 병이다. 사흘째 저러신다."
"이가 아픈 겁니다. 왼쪽 아래, 아마 어금니." 서진은 소리의 높낮이만으로 짚어 보았다. 삼킬 때마다 끊기는 신음, 숨을 들이쉴 때 길어지는 떨림. 찬 바람이 닿을 때 더 아파지는 통증의 리듬. "찬물을 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오른쪽으로 눕히세요."
문밖이 오래 조용했다. 이윽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뛰는 걸음이었다. 서진은 자기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이 세계에서 낯선 자가 왕의 병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는 아직 몰랐다.
서진은 거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가 아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저 소리를 낸 사람이 누구든, 내일 아침이면 자신을 찾게 되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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