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은패
은패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서진은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새벽빛에 비춰 보았다. 앞면에는 용이, 뒷면에는 그가 읽을 수 없는 글자 넉 자가 새겨져 있었다. 단이 그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낮게 읽어 주었다. "내의원 별제. 이제부터 나리는 궁 안 어디든 약을 들고 드실 수 있습니다." 나리라는 말이 어색해서 서진은 웃으려다 말았다. 어제까지 그는 진료실 의자에 앉아 예약 시간이 밀린다고 투덜대던 사람이었다.
내의원은 궁의 서쪽, 회랑 끝에 있었다. 약재 냄새가 문 밖까지 흘러나왔고, 안에서는 열댓 명의 의관들이 저마다 절구와 약저울 앞에 앉아 있었다. 서진이 들어서자 손들이 일제히 멈췄다. 맨 안쪽 자리에서 허문이 천천히 일어났다. 어젯밤 탕약 그릇을 들고 침전 문 앞에 서 있던 그 얼굴이었다. "별제께서 오셨군." 허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서진은 그 부드러움이 어디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의 입 안을 들여다보는 직업을 오래 하면, 웃는 얼굴 뒤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이는 법이다.
"전하의 탕약은 누가 짓습니까." 서진이 물었다. 허문은 대답 대신 서진을 약재 창고로 안내했다. 선반마다 이름표가 붙은 서랍이 있었고, 그중 하나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독한 약은 따로 둡니다. 비상, 부자, 천남성. 열쇠는 내가 갖고 있소." 허문이 허리춤의 열쇠를 보여 주며 말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물쇠의 모양을 눈에 담았다. 단은 문 밖 회랑에 서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창고 벽에 나란히 드리우는 것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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